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뤼흐 스피노자 (문단 편집) === 적합한 인식과 공통 개념 === 그렇다면 인간은 수많은 마주침에서 자신의 코나투스를 증대시켜줄 수 있는 '기쁨'의 정서만 찾으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스피노자에 따르면 정서는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간에,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외적인 마주침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수동적인 '''정념'''(passion[* passion는 열정, 정욕을 뜻하지만, 원래 '수동'이라는 뜻이었다. 비슷한 어원에서 유래한 passive 라는 단어도 '수동적인'이라는 뜻이다.])에 불과하다. 우연적이고 외적인 마주침에서 생겨나는 '정념'에 따를 경우, 서로가 대립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분쟁과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정념에 의해서는 동일한 사람조차 변하기 쉽고, 심지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보더라도 해로운 것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판단을 결정짓는 것은 자신의 이성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마주치게 된 다른 외적 원인들이다. 물론 우리는 스스로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으며, 외적으로 야기된 정서의 공세에 맞서 자신을 내세울 모종의 활동 역량(코나투스)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매우 빈번하게 정서를 야기하는 외부 영향은 종종 우리의 능동적인 역량보다 더 강하며,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느낌, 정서 혹은 행동들을 제어하지 못한다. 정념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기에 스피노자는 이러한 상태를 '''예속'''이라 정의한다. 예속을 극복하는 길은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태도로 우리 자신의 '활동 역량'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 확장시키려는 데에 있다.[* 물론 활동 역량이 증대되면 '기쁨'의 정서가 생긴다. 하지만 정념을 통한 기쁨의 정서와 다른 점은, 그것이 외부 자극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획득한 것이냐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활동 역량의 확장은 자신의 능력으로 설명되는 관념을 갖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즐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전거 타기를 배워야 된다. 즉, 자신이 실제로 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실천적 관념을 직접 소유함으로써, 자신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여러 적합한 시도들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경우에 그가 자전거와 부딪쳤던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자전거는 단지 기분상하게 하는 물건일 따름이어서 우리의 활동 역량을 증대시켜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으로 설명되는 관념을 갖기 위해서는 '적합한 인식'이 필요하다. 우선, 정념에 대한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그 감정과 상황의 원인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그 사물의 존재 자체의 원인을 정확하게 그리고 적합하게 인식할 때,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상당히 누그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적인 상황에 대해 명석 판명한 관념을 형성하는 순간,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모든 사건을 원인과 결과에 따라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사물들을 그 자체로 인식할 것이며 그것들에 대해 정서적으로 덜 동요하게 될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적합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가? 그것은 외적 자극에 의해 우연하게 파악되는 이미지의 인식[* 이미지의 인식은, 앞서 말했듯이 외부의 충격으로 우리 신체에 새겨지는 기억을 의미한다. 이미지에 따른 인식은 외부 자극에 휘둘리기 때문에, 수동적인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의 코나투스에 관한 것이므로, 사물의 '내적 원인'에 대한 인식이어야 한다. 게다가 우리의 코나투스가 증가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반대되는 힘이 아니라 우리와 공통의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는 곧 많은 사물을 동시에 명료하고 뚜렷하게 관찰하여 사물의 '내적 원인'에 대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공통적인 것에 대한 관념을 '''공통 개념'''이라 부른다.[* 주의해야 할 점은, 공통 개념은 다른 신체들 간의 외적인 유사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적 유사성에 집착하는 것은 이미지에 의한 인식으로 이것은 정념으로 이어진다. 공통 개념은 사물들 간의 인과관계의 질서 속에서 작용하는 공통된 '내적 원인'을 이해해야 됨을 말한다.][* 공통 개념은 우리가 가진 역량의 일부분이면서 우리 자신의 역량을 증진시키기도 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수동의 정서에 의존하지 않고 능동적 기쁨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물론, 인간은 본성상 정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며 정념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나, 우리가 인간 자신이나 정념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만 한다면, 정념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능동적인 역량인 '이성적인 인식'을 통해서 이러한 내적 원인의 공통 개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이성적인 인식이 곧 '참된 욕망(코나투스)'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성'과 '욕망'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상정하고 이성이 그 욕망을 제어해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욕망'은 이제 '이성적인 행위로 충족되는 것'으로 탈바꿈한다. 여기서 자신의 이성적 능력이 크거나 작다는 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성적 능력이 확장되고 있는가, 축소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비록 우리가 작은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자유롭고 능력있는 존재로 만드는 첫 단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